![목포항에서 흑산도 예리항으로 입항하는 여객선 [사진=필자제공]](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609/742762_565230_5813.jpg)
섬에 살다 보면 육지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의료다. 육지에서는 몸이 아프면 자동차를 타고 병원으로 갈 수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119 구급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섬에서는 바다와 날씨가 길을 결정한다. 배가 끊기면 길도 끊긴다. 야간이나 기상이 좋지 않은 날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주민과 가족이 느끼는 불안은 육지에서는 쉽게 체감하기 어렵다.
그래서 섬에서 의료는 단순한 복지서비스가 아니다. 때로는 생존의 문제이며, 어디에 살든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국민의 권리에 관한 문제다.
전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섬을 가진 지역이다. 섬 주민의 의료 문제를 빼놓고 전남의 공공의료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욱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섬과 농어촌에서는 만성질환 관리뿐 아니라 응급의료, 분만, 재활, 돌봄까지 연결되는 의료복지체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전남 국립의대 신설은 단순히 한 대학에 의과대학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먼저 물어야 한다.
전남에 왜 국립의대가 필요한가.
그 출발점은 지역 간 의료격차와 의료취약성에 있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비해 의료인력과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응급·중증 환자가 적절한 시간 안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어려운 지역에 국가가 공공의료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섬 주민에게 의료의 핵심은 병원이 있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 그 병원에 도착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남에서는 지금도 병원선이 섬을 찾아다니며 진료하고,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닥터헬기와 해경, 소방 등이 육지의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한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 하나가 주민의 생활뿐 아니라 응급의료 접근성을 크게 바꾸기도 한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중증외상과 같은 응급질환에서 한두 시간의 차이는 단순한 이동시간의 차이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의 차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전남에 만들어질 국립의대는 일반적인 의과대학과는 조금 다른 역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섬과 농어촌의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의과대학이어야 한다.
의사를 배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역에서 일할 의료인을 양성하고, 섬과 농어촌의 의료문제를 연구하며, 보건소와 보건진료소, 병원선, 지역 의료기관, 응급이송체계와 대학병원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
원격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이송할 수 있는 체계와, 마지막 단계에서 중증환자를 받아 수술하고 치료할 수 있는 거점병원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바로 이런 관점에서 최근 전남 국립의대 후보대학 선정 과정에서 제기된 논란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30일 국립순천대학교가 국립의대 신설 후보대학으로 선정됐다. 평가 결과 순천대는 89.15점, 국립목포대는 87.85점으로 두 대학의 차이는 불과 1.3점이었다. 이후 심사위원 구성과 평가기준, 부지 확보의 현실성 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의대 부지 문제는 쉽게 지나칠 사안이 아니다.
순천대는 순천시가 소유한 약 15만㎡의 부지를 무상 임대해 의대 부지로 활용하는 계획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목포대는 이미 대학이 확보한 부지를 제시했다. 현재 목포대는 순천대의 부지 확보 방식이 국립대 설립 요건에 부합하는지 문제를 제기하며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순천대와 관계 지방정부는 현재의 소유권 자체가 아니라 향후 부지 확보계획을 평가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이미 확보된 부지와 앞으로 확보하거나 사용할 예정인 부지가 '부지 확보의 확실성'이라는 평가에서 사실상 비슷하게 평가됐다면,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더욱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산하 의대설립추진기획단도 최근 순천대가 제시한 부지의 소유구조와 실제 사용 가능성 등에 대한 추가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차원에서도 부지 문제가 실제 설립 요건을 충족하는지 다시 살펴보고 있는 셈이다. 전체 평가의 차이는 1.3점이었다. 그렇다면 작은 평가 하나도 최종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갖추고 있는 조건과 앞으로 충족해야 할 조건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단순한 결과 불복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정책 결정이 합리적이고 공정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국립의대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의료격차 해소라면 평가에서도 그 목적이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어느 지역에서 응급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더 떨어지는가. 고령자와 의료취약계층은 어디에 더 많이 분포하는가. 섬과 농어촌 주민이 중증·응급의료기관에 접근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새로운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지역의 공공의료 공백을 실제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평가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교수 확보 가능성이나 정주여건도 물론 중요하다. 의료인력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환경을 갖추는 것은 의과대학 운영에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의료취약지역은 대체로 교통과 생활 인프라, 정주여건도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그런데 국립의대를 의료취약성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하면서 정주여건이 좋은 지역을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평가한다면 정책의 목적과 평가기준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의료가 부족한 곳에 의료를 보강하기 위해 국립의대를 만드는 것인지, 이미 여러 조건이 좋은 곳에 의대를 만드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공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공정은 서로 다른 조건을 모두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확보된 부지와 앞으로 확보해야 하는 부지에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의료 접근성과 의료취약성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 역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미리 공개된 동일한 기준으로 그 차이를 판단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차이를 평가에서 지워버린다면 그것 역시 공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 정부는 국정운영의 3대 원칙으로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를 제시하고 있다. 그중 '공정과 신뢰'는 불공정과 특권을 해소하고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는 의미다.
전남 국립의대 문제는 바로 이러한 원칙이 실제 정책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례다. 정부와 관계기관이 해야 할 일은 특정 지역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평가기준과 심사과정이 정책 목적에 맞았는지, 각 대학이 제시한 조건이 동일한 기준으로 검증됐는지, 부지와 병원 설립계획이 실제로 실행 가능한지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문제가 없다면 투명한 검증을 통해 결과의 신뢰를 높이면 된다. 반대로 평가 과정이나 요건 확인에서 중대한 문제가 발견된다면 바로잡는 것이 맞다. 무엇보다 국립의대는 어느 대학에 주는 상도 아니며, 어느 지역이 차지하는 전리품도 아니다. 완도에서 한밤중에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신안의 작은 섬에서 뇌졸중 환자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빨리 전문의에게 도착할 수 있는가. 진도와 해남, 고흥을 비롯한 농어촌의 고령 주민들이 큰 병에 걸렸을 때 수도권까지 가지 않고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가. 전남 국립의대를 결정하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섬에 산다는 이유로 생명의 기회까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바람이 불고 배가 끊긴다는 이유로 의료복지에서 소외되어서도 안 된다.
섬은 대한민국의 변두리가 아니다. 그곳에도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늙어간다.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배와 헬기가 바다를 건넌다. 전남 국립의대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대학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후보대학 선정 논란에서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것은 단순히 어느 대학의 점수가 더 높았는가가 아니다.
가장 의료가 필요한 사람들의 삶이 평가에 얼마나 반영되었는가. 그리고 섬과 농어촌 주민의 생명권이라는 국립의대 설립의 본래 목적이 충분히 고려되었는가.
이 질문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내놓는 것. 그것이 전남 국립의대 논란을 지역 간 경쟁에서 공공의료의 문제로 돌려놓는 길이며,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과 신뢰'를 국민의 삶 속에서 증명하는 길일 것이다.

홍선기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교양학부 교수
(사)한국섬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