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여수에서는 섬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가 열리고 있고, 개도와 금오도에도 사람들이 찾아간다. '섬, 바다와 미래를 잇다'라는 주제처럼 지금 여수는 섬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수에 살다 보면 섬으로 가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는 것도 실감한다.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고,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잠시 차를 세운다. 섬에 도착해서는 어디를 둘러볼지,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한다.
박근세 작가의 <여수, 섬을 걷다>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여수의 섬을 다시 보게 됐다. 지금은 몇 분이면 건너는 바다를 배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사람이 있었고, 한적한 마을로 보이는 곳에서 물을 구하고 농사를 짓고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며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책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풍경을 찍으러 갔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박근세 작가는 40여 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여수의 365개 유·무인도를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섬의 풍경을 찍었지만 같은 곳을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사진만 찍고 돌아올 수 없었다.
마을에는 오래된 비석이 있었고 우물이 있었으며 사람들이 오가던 옛길도 남아 있었다. 왜 이런 것이 여기 있는지 궁금해 주민들에게 물었고, 오래된 문헌과 지도도 찾아봤다. 어르신에게 들은 이야기는 적어두거나 목소리로 남겼다.
사진에 바다와 마을은 담을 수 있어도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까지 한 장에 모두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진 밖에서 만난 이야기가 <여수, 섬을 걷다>에 함께 들어왔다.
박근세 작가가 섬에서 눈여겨본 것은 전망 좋은 바다만이 아니었다. 마을에 남은 우물을 들여다보고 오래된 비석 앞에 멈췄으며,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예전의 생활을 물었다.
그래서 책에는 손죽도와 금오도에 남은 옛이야기뿐 아니라 초도와 평도, 가장도와 거문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사정도 나온다. 사도의 물, 화태도의 논, 개도의 김, 대경도의 갯장어처럼 섬에서 먹고살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도 함께 기록돼 있다.
섬에서의 생활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땅이 없으면 만들고, 쥐가 많으면 고양이를 길렀다
화태도에서는 주민 44명이 힘을 모아 논을 만들었다. 육지에서는 논 한 뙈기가 특별할 것 없지만, 농사지을 땅이 넉넉하지 않은 섬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농사지을 땅이 생겼다. 지금 논만 바라보면 알 수 없는 시간이 그곳에 있었다.
평도 이야기는 또 다르다. 1960년대 평도 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쥐였다. 농산물과 해산물을 해칠 정도로 쥐가 많아지자 주민들은 고양이를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었다. 쥐약을 먹은 쥐를 잡아먹고 고양이가 죽는 일도 생겼다. 주민들은 다시 고양이를 들여왔고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돌봤다. 몇 년에 걸친 일이었다. 평도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지금 읽으면 조금 낯설고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주민들에게는 마을에서 먹고살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섬에서 산다는 건 주어진 풍경을 바라보며 사는 것만은 아니었다. 물이 부족하면 물을 구할 곳을 찾아야 했고, 농사지을 땅이 필요하면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했다. 바다가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방법으로 먹고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개도에서는 김 양식이 주민들의 살림과 연결됐고 대경도에서는 갯장어가 중요한 생업이 됐다. 묘도와 지신도에서는 어장을 두고 마을 사이에 다툼도 있었다.
여행을 가서 보는 바다는 오래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에게 바다는 일을 하고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곳이었다.
<여수, 섬을 걷다>에는 그 차이가 여러 섬의 이야기로 들어 있다.
바람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던 섬
육지와 섬을 오가는 일도 지금과는 달랐다. 여객선이 다니던 시절에는 날씨와 배 시간이 하루의 일정에 들어 있었다. 바람이 심해 배가 뜨지 않으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백야도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섬 통학과도 조금 다르다. 책에는 육지에서 섬으로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이 나온다. 지금은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도 한때는 배를 타고 학교를 오가던 아이들의 시간이 있었다.
조발도에서는 다리가 놓인 뒤 생활이 달라진다. 배 시간을 맞추던 일상이 자동차로 오갈 수 있는 생활로 바뀌면서 섬과 육지 사이의 거리도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이런 변화를 읽고 나니 지금의 여수에서 당연하게 사용하는 길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섬과 섬 사이를 이어놓은 다리는 여행객에게는 편리한 길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장을 보고 병원에 가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방법 자체를 바꾼 길이다.
그래서 박근세 작가가 기록한 것은 사라진 옛 풍경만은 아니다. 길 하나가 생기고 배 한 척이 사라지는 사이 사람들의 하루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그 안에 있다.
2026년 여수에서는 섬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섬박람회를 찾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과 앞으로 달라질 섬의 모습을 만난다.
그 시기에 <여수, 섬을 걷다>가 나온 것도 흥미롭다. 한쪽에서는 앞으로의 섬을 이야기하고, 이 책에서는 그 전에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을 꺼내놓는다.
나도 여수의 섬을 찾아갈 때면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 바다가 잘 보이는지, 어느 길로 가면 드라이브하기 좋은지부터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음에는 조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것 같다. 지금 내가 편하게 지나가는 길이 생기기 전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오갔는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논과 포구에는 어떤 생활이 있었는지 한 번쯤 더 보게 될 것 같다.
여수의 섬은 그대로인데 내가 그 섬에서 보게 되는 것은 전보다 많아졌다.
출처 : 오마이뉴(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