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농신문 백종호 기자]
국가 차원에서 적극 장려중인 귀농귀촌 인구가 답보상태(오히려 후퇴)인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차고 넘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 중 몇 개만 추려보면 (농어민으로서의) 소득 불안정,(자녀)교육문제 등과 더불어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 쉽지 않은 이른바 ‘의료접근성’이 크게 뒤쳐져있다는 점도 포함된다. 이는 통계청의 국내 의료기관 숫자 집계만 살펴봐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국내 의료기관 숫자(2023년 1분기 자료)는 군 지역 6,097개(8.0%), 시 지역 3만 3,276개(43.5%), 구 지역 3만 7,045개(48.5%)로 시와 구를 포함하는 대도시와 중소도시에 92%가 몰려 있다. 우리나라 농촌지자체의 대부분인 군 지역 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 숫자의 8%에 지나지 않는다. 92(도시) 대 8(농촌)! 이게 바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지역 간 격차의 현주소다.
실제로 우리나라 농촌 거주 노인이 병원에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3.3분으로 나타나있고 마을버스 등 대중교통(59.5%)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고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 농촌에 사는 65세 이상 노인들은 읍내병원을 가는데 마을버스 타고 3~40분을 혼자서 이동해야 한다는 뜻.(농촌진흥청 ‘2021 농어업인 등에 대한 복지실태조사’ 결과)
그래서 우리나라 농어촌 지자체에선 ‘의사 찾아 삼 만리’를 넘어 의료접근성 제고를 위해 치열하게 각자도생(?)중이다. ‘마을주치의’ 제도를 통해 병원에 가기 쉽지 않은 농어촌 사람들 ,그 중에서도 노인계층을 대상으로 진료활동을 벌인다. 병원이 있어도 도시나 읍내에만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 동안 중앙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지만 일선 지자체들은 고령화와 의료시스템 부족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전남 화순군의 ‘마을주치의' 제도가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마을주치의가 매주 1회 13개 읍·면 마을 경로당을 순회하며 진료한다. 공중보건의사(의사·한의사·치과의사)와 간호사가 한방진료, 혈압, 혈당, 구강 검사, 심뇌혈관질환, 관절염, 소화불량, 노인 우울증 등 지역 고령층 환자의 건강 상태에 맞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지자체는 꽤 많다. 복분자로 유명한 전북 고창군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섬인 전남 진도군도 마찬가지.
그런데 최근 이런 현상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할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관심이 모아진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 자료를 살펴보면, 국회 제429회 국회(정기회) 제14차 의결일 2025년 12월 2일에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이는 의사면허 취득 후 10년 정도 의료취약지 등 특정 지역에서 의무복무 할 것을 전제로 의대 신입생을 선발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뜻.
법률안 제안 이유가 대한민국 의료취약지역 현실을 잘 보여주는데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도 비수도권 및 의료취약지에 근무하지 않으면, 지역 간 의료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됨”이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1천명 당 활동 의사 숫자는 2.6명, OECD 평균 3.7명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의사들의 대도시권(광역지자체) 근무 쏠림현상이 심각한데, 서울 3.2명인데 비해 전남은 1.7명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농어촌 지자체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수도권 지역엔 의사인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전국 지방의료원 35곳의 의사 결원율은 지난 2018년 7.6%에서 2022년 14.5%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나 의료취약지 공공병원은 수도권 대비 높은 임금을 제시해도 심각한 의사채용난을 겪어 필수의료분야 진료과를 수년간 휴진하는 등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침내 12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은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할 지역의사를 양성하는 내용이 핵심. 이 법안에는 지역의사를 별도로 선발한 뒤에 졸업 후 의무 복무하는 ‘복무형 지역의사’를 비롯해, 전문의가 지역의료기관과 종사 계약을 체결하는 ‘계약형 지역의사’로 구분해 운영하도록 했다. 복무형 지역의사는 면허 취득 후 10년간 지역에서 근무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면허정지·면허취소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 농어촌 노인이 마을버스 타고 30분 걸려 병원 가는 현실, 이것도 해결될까?
법률안 제 2조의 용어정의를 살펴보면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지역”이란 특별시ㆍ광역시ㆍ특별자치시 또는 특별자치도(이하 “시ㆍ도”라 한다) 중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을 말한다. 또한 “지역의사”란 제7조에 따라 특정 지역 내에서 의무복무를 하여야 하는 의사ㆍ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를 말한다.아울러. “지역의사선발전형”이란 지역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자를 선발하기 위하여 대학의 장이 실시하는 대학 입학 전형을 가리킨다.
의료취약지역의 고교졸업자를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해야 한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또한 지역의사선발전형 선발 숫자는 시ㆍ도별 의료취약지(「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12조에 따른 의료취약지를 말한다)의 분포, 의료기관의 수 및 부족한 의료인력 수 등을 고려하여 정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장학금 지원도 규정되어 있다. 제5조(장학금 지원)항목에는 국가는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선발된 학생에 대하여 입학금,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학업에 필요한 경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장학금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10년 동안 한 곳에서만 근무해야하는 게 의무이긴 하지만 근무지역을 옮길 수도 있다. 제10조(의무복무지역의 변경 등)에 다르면, (지역에) 배치된 지역의사가 부득이한 사유로 의무복무지역 또는 의무복무기관을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의무복무기관의 장을 거쳐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은 의무복무기관의 장 및 시ㆍ도지사와 협의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복지부는 하위법령을 신속히 제정함과 동시에 법률안 제정을 토대로 (많은) 의료인력이 지역에서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방침인데, (지역의사로서)의무복무기간 완료 후에도 해당 지역 내 의료기관 우선 채용, 의료기관 개설 지원도 펼칠 계획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지역의사제의 법적 근거 마련은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역의사제도’와 더불어 (의사들의)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될 「의료법」 개정안 역시 지난 12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대면 진료는 최근 코로나19 즈음부터 약 6년 가까이 시범운영되어 온 제도로서 법적 제도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번 법률 개정안엔 대면진료 원칙,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재진환자 중심 등의 원칙이 포함됐다. 즉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환자는 (원칙적으로) 해당 의료기관에서 일정기간 내 동일한 증상으로 대면 진료 받은 기록이 있는 재진 환자에 한정한다는 뜻.
하지만 초진 역시 환자의 거주지와 의료기관 소재지가 동일 지역에 있으면 가능하다. 비대면 진료 수행 의료기관은 의원급으로 제한하지만,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게도 희귀질환자, 제1형 당뇨병 환자, 교정시설 수용자, 수술 후 경과 관찰이 필요한 환자 등에 한해서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 「비대면진료 의료법」 개정안도 국회 통과...“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토대”
정부와 국회의 이런 움직임과 함께 의사협회, 간호사협회, 물리치료사협회 등의 동향도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지난해 여름, 서울시의사회 산하 지역 의사회 심포지엄에선 우리 시대 사회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의료돌봄’이 일선 동네의원에서는 새로운 파이(수익창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돌봄은 의료와의 효율적인 연계가 핵심”, “살던 곳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관계망이 중요”, “의료돌봄은 새로운 파이가 될 수도 있다”, “동네의원과 지역의사회 역할이 중요할 것”, “지역단위에서 의사회, 보건소 등이 창의적,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등의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엔 대한간호협회도 정부에 공식제안 성격의 비전선포식을 열었다. 지난 11월 17일 대한간호협회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2025 간호정책 선포식'을 열고, (지난해 간호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국가 보건의료 방향을 이끌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이날 행사의 핵심내용은 ‘ 간호중심의 돌봄체계 구축’을 선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국가와 의료계가 합심해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의료 패러다임을 간호사 중심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
간호협회는 특히 간호·요양·돌봄의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 통합체계를 구축해 운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위해 「간호법」에 ‘재택간호’항목을 신설해서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배치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는 법제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생애주기별 건강 상태에 따라, 도시형(간호사 클리닉 스테이션), 농촌형, 재택 순회형 돌봄 모델을 개발해 이를 확산시켜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이와 별도로 방문 물리치료사제도 역시 도입 여부를 놓고 관심을 끈다. 방문 물리치료사제는 의사의 처방을 전제로 물리치료사가 의료기관이 아닌 장소(가정, 요양시설 등)에서 환자에게 물리치료를 제공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방문물리치료사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나, 대한의사협회는 현행 「의료법」과 「의료기사법」에 위배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실정. 하지만 노인, 장애인 등 의료 취약계층의 서비스 접근성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문물리치료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2025년 농어촌 현장의 생생한 현실이란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아무쪼록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대통령실과 농식품부, 보건복지부를 포함해 의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 등은 농촌 진료, 돌봄 모델을 보다 세밀하게 마련해 조속히 실행해야 할 것이다. 국회에서 발의됐거나 논의됐지만 제도화되지 못한 많은 법안들(간호간병급여화법, 지역사회통합돌봄법,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 등)은 사실 농어촌 거주 의료소외지역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절규라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그 활동에 힘을 싣고 있는 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역시 바로 이런 점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것 같다.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놀랍기도 하다. 지난해 1인 가구는 804만 5천 가구로 전년(782만 9천 가구) 대비 21만 6천 가구(2.8%) 증가해 1인 가구 비중이 2023년 35.5%에서 2024년 36.1%로 상승했다. 그런데 1인 가구의 31.1%는 몸이 아플 때 도움 받을 사람이 전혀 없다고 답하고 있다. 바로 이게 우리나라의 지역소멸 위기, 1인 가구 폭증과 연계된 의료시스템의 현실이다. 의료시스템, 그 중에서도 진료, 돌봄 시스템의 전면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출처 : 한국영농신문(백종호 기자 bjh@youngn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