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넓고 낮은 땅이 드러난다. 멀리서 보면 그저 진흙빛 벌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곳은 쉼 없이 움직이는 생명의 도시다. 칠게가 옆걸음으로 길을 내고, 갯지렁이는 흙을 뒤집으며, 작은 조개와 미생물은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간다. 철새에게 갯벌은 긴 여정을 버티게 하는 쉼터이고, 어민에게는 생계의 터전인 삶터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기후위기의 시간을 늦춰주는 자연의 방파제다.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은 이제 세계가 함께 지켜야 할 유산이 되었다. 2021년 서천·고창·신안·보성-순천 갯벌이 '한국의 갯벌'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고, 이제 여수·고흥·무안·서산 갯벌까지 더해 총 6개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확대됐다. 갯벌은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수천 종의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를 따라 수많은 철새가 오가는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한국 서남해안의 갯벌은 한 지역의 풍경이 아니라,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생명의 길이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부산 개최를 기념하여 조성된 '세계유산위원회 대한민국관(K-Heritage House)'(2026.7.20~7.29, 부산 벡스코)의 '한국의 갯벌' 관련 부스 [사진=필자 제공]](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608/740572_562241_1933.jpg)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부산 개최를 기념하여 조성된 '세계유산위원회 대한민국관(K-Heritage House)'(2026.7.20~7.29, 부산 벡스코)의 '한국의 갯벌' 관련 부스 [사진=필자 제공]
지난 7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기념해 부산 벡스코에 마련된 <세계유산위원회 대한민국관(K-Heritage House)>을 찾았다. 해양수산부와 (재)한국의갯벌세계유산등재추진단, 그리고 순천시에서 한국의 갯벌을 소개하는 부스를 각각 운영하며 생태적 가치와 함께 기후위기 시대 자연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홍보했다. 그러나 세계유산이라는 이름만으로 갯벌의 가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등재는 인증일 뿐, 보전과 활용의 성패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가치를 누가, 어떻게 이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다.
갯벌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낯선 공간이다. 아이들은 갯벌을 교과서 속 사진으로 배우고, 도시의 방문객은 썰물 시간에 맞춰 잠시 들렀다가 조개를 캐고 돌아가는 체험으로 기억하기 쉽다. 생물다양성, 철새 이동, 탄소 저장, 전통 어업, 공동체의 삶이 한데 얽힌 갯벌의 진짜 이야기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갯벌을 '진흙이 많은 바다' 정도로만 인식한다면, 세계유산의 가치는 결국 안내판 속 문장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세계유산 갯벌을 얼마나 넓게 지정했는가가 아니라, 그 갯벌을 통해 얼마나 깊은 배움과 공감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만 AI가 갯벌을 대신 설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AI는 사람을 자연에서 멀어지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을 더 깊이 만나게 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갯벌 탐방객이 휴대전화로 생물을 비추면 AI가 칠게·농게·짱뚱어·염생식물의 이름만 알려주는 수준을 넘어, 그 생물이 갯벌 생태계에서 맡은 역할과 철새·어민의 삶과 맺는 관계까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는 "게가 만든 작은 굴이 왜 갯벌의 숨구멍인지"를 들려주고, 청소년에게는 탄소흡수원으로서 블루카본의 의미를 설명하며, 연구자와 교사에게는 조류·수온·생물종 변화 데이터를 연결한 심화 학습자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결합한 '디지털 갯벌 교실'도 생각해볼 만하다. 물때가 맞지 않거나 현장 접근이 어려운 학교는 교실에서 철새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고, 갯벌 생물의 시선으로 땅속과 바닷속을 탐험할 수 있다. 갯벌에 직접 들어가기 어려운 장애인·고령자에게도 새로운 체험의 길이 열린다. 현장 체험 전에는 AI 기반 사전학습으로 생태계의 기본 원리를 익히고, 현장에서는 해설사와 어촌계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체험 후에는 관찰 기록을 디지털 생태일지로 남기는 방식이다. 기술과 현장, 데이터와 기억을 연결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분명하다. AI가 갯벌의 주인이며 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갯벌의 진짜 교사는 갯벌 그 자체이고, 그곳을 오랫동안 지켜 온 주민들이다. 맨손어업과 가래질, 물때를 읽는 감각, 철새가 찾아오는 계절을 기억하는 어민의 경험은 데이터만으로 완전히 옮길 수 없다. 인공지능은 그 지식과 기억을 기록하고 확장하는 조력자여야 한다. 지역 주민이 해설 콘텐츠 제작과 데이터 수집, 체험 프로그램 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기술은 비로소 지역의 자산이 된다.
최근 제주 해녀 문화를 소재로 한 게임 'Waves of Jeju: Diving School(제주의 파도: 해녀학교)'가 미국 더럼 게임상(Durham Game Awards)에서 최고 서사상(Best Narrative)을 받은 소식은 의미가 크다. 제주와 독특한 인연을 맺은 카렌 스트리징거(Karen Stritzinger)는 게임으로 제주 민속·전통·해양 생태계를 탐험하며 제주해녀의 공동체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직접 해녀학교를 다니며 교육용 VR 디지털 콘텐츠로 개발하였다. 한 지역의 삶과 노동, 공동체의 정신은 낯선 언어와 국경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렇듯 문화유산은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을 때보다, 한 사람의 선택과 감정, 삶의 이야기로 만날 때 더 오래 기억된다. 갯벌도 마찬가지다. 생물종의 목록과 면적 수치만으로는 세계인을 설득하기 어렵다. 갯벌에서 살아가는 사람, 잠시 쉬어 가는 철새, 바다와 육지를 잇는 생명의 순환을 하나의 서사로 만들 때 갯벌은 비로소 '살아 있는' 세계유산이 된다.
![미국 올드 하라 스튜디오 카렌 스트리징거(Karen Stritzinger) 대표가 만든 제주 해녀문화 소재의 VR 게임 [사진=Waves of Jeju – Old Hara Studios]](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608/740572_562242_2242.png)
미국 올드 하라 스튜디오 카렌 스트리징거(Karen Stritzinger) 대표가 만든 제주 해녀문화 소재의 VR 게임 [사진=Waves of Jeju – Old Hara Studios]
세계유산의 경쟁력은 화려한 시설이나 방문객 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보전의 수준, 주민의 참여, 교육의 깊이, 청년의 일자리, 지역의 자부심이 함께 커질 때 지속가능한 유산이 된다. 무분별한 체험과 관광객 집중이 갯벌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활용이 아니라 소비다. 반대로 과학적 탐방 인원 관리, 주민 주도의 해설, AI 기반 생태 모니터링, ESD 기반의 학교 연계 교육이 어우러진다면 갯벌은 보전과 지역 발전이 공존하는 미래의 교실이 될 수 있다.
AI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연과 맺어 온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다. 기술은 갯벌의 모습을 정교하게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가던 사람들의 기다림, 철새가 내려앉는 순간의 경이, 갯벌 위에서 이어져 온 공동체의 시간까지 대신 살아낼 수는 없다.
갯벌 세계유산의 미래는 기술의 화려함에 있지 않다.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서사를 품은 갯벌의 생명을 이해하고, 그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유산 등재는 영광의 종착점이 아니라 책임의 출발점이다. 갯벌에 깃든 생명의 이야기와 그곳을 지켜온 어민들의 기억을 다음 세대의 배움과 상상력으로 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갯벌에 남겨야 할 것은 발자국이 아니라, 그 생명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오래된 약속인 것이다.

이경아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사) 동아시아갯벌연구소 이사
원고: 이경아(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출처 : 폴리뉴스 Polinews(https://www.poli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