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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257

[섬 이야기] 영국 저지섬(Jersey Island) 주민 정체성: 경계 위에서 빚어진 섬의 이야기 (김재은)

수정일
2025.11.04
작성자
김강민
조회수
145
등록일
2025.11.04

[폴리뉴스 김재연 칼럼니스트] [폴리뉴스 김재연 칼럼니스트] 


저지섬의 위치 [구글맵 활용]

저지섬의 위치 [구글맵 활용]




영국 해협에 자리한 저지섬(Jersey)은 채널 제도의 영국 왕실령 섬으로 채널제도에는 저지 섬(Jersey)을 포함해 건지(Guernsey) 섬과 올더니(Alderney), 사크(Sark), 험(Hurm), 제투(Jethou), 브레쿠(Brecqhou), 리우(Lihou) 등의 섬을 포함하고 있다. 채널제도의 섬들은 영국 잉글랜드의 웨이머스(Weymouth)에서 남쪽으로 약 160㎞ 정도 떨어져 있다. 면적은 118.2㎢, 섬의 너비는 약 16㎞, 남북 길이가 약 8㎞ 정도로 면적이 우리나라 영종도 보다 약간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저지섬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서 불과 19km 떨어져 있으면서도 영국 왕실령으로 분류된다. 영국과 프랑스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놓인 이 섬은 독자적인 의회와 법률, 세제를 운영하는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다.




저지 젖소 품종의 원산지인 목축업의 상징물
저지 젖소 품종의 원산지인 목축업의 상징물



이러한 제도적·지리적 경계성은 저지 주민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어왔다. 이 섬의 전통 언어는 저지 노르망어(Jèrriais)로, 한때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였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언어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식 문서나 거리 표지판에서 Jèrriais가 다시 쓰이고, 교육 현장에서도 가르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영국도 프랑스도 아닌 섬 고유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해안가에서 본 엘리자베스 캐슬
해안가에서 본 엘리자베스 캐슬



문화적 흔적 또한 두 세계가 겹쳐 있다. 법과 제도는 영국을 따르지만, 건축양식이나 음식 문화, 주민들의 성씨에는 노르망디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의 경험은 주민들에게 공동체적 기억으로 자리 잡아 세대에 걸친 상징적 결속을 남겼다. 저지 주민들의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다. 그들은 법적으로는 영국 시민이면서, 동시에 저지 사람으로서의 소속감을 지니며, 역사적으로는 노르망 문화권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상황에 따라 강조되는 층위가 다르다. 영국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을 영국인이라 하지만, 외부에 섬을 소개할 때는 저지만의 고유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저지는 금융과 관광업이 경제를 이끌고 있으며, 포르투갈을 비롯한 외국 출신 이주민이 많이 정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누가 진짜 저지인 인가?"라는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랫동안 거주한 토박이만을 진정한 저지인으로 보려는 시각과, 새로운 이주민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시각이 부딪히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이 배제의 논리로 작동할 위험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양성을 수용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도 제시한다.



저지섬 수산물시장 내 한국이름 상점
저지섬 수산물시장 내 한국이름 상점



최근 저지 정부는 "Island Identity Project"를 추진하며 언어와 문화, 역사적 자산을 보존하고 강화하려 한다. Jèrriais(저지 노르망어)를 공적 영역에서 다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정체성을 과거의 흔적이 아닌 현재와 미래의 사회적 자원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정체성은 단순히 지켜야 할 유산이 아니라, 지역 발전과 문화적 재생의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저지섬의 해안가 항구
저지섬의 해안가 항구




저지의 사례는 정체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간과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협상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임을 잘 보여준다. 언어의 쇠퇴와 부흥, 이주민의 정착과 갈등, 전쟁과 해방의 기억이 겹겹이 쌓이며 오늘의 정체성을 빚어낸다. 정체성은 완결된 답이 아니라 변화와 축적을 거듭하는 여정이다. 한국의 섬들도 비슷한 과제 앞에 서 있다. 고령화로 인해 전통적 정체성이 약화되고, 새로운 인구 유입과 산업 전환으로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농어업 중심의 섬이 관광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토박이 주민과 새 이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지섬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울림을 준다. 정체성을 하나의 틀로 고정시키기보다는, 다양한 현상들이 중첩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섬의 정체성이란 특정한 모습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협상의 과정 그 자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저지섬의 이야기는 먼 바다 건너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닿아 있는 현실의 거울이다.


김재은 교수

김재은 교수는 일본 히로시마대학 대학원에서 경관생태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섬의 공간을 경관생태학적 방법으로 연구해왔다. 특히 섬의 공간구조 해석을 통해 주민의 생활과 생태문화의 관계, 생태계서비스 적용 가능성 등을 탐구하며, 섬을 다학제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서 한국연구재단 지원사업인 '섬인문학' 연구단의 학술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26년 7월 7일부터 11일까지 전남 신안에서 개최하는 제20회 ISISA세계섬학술대회(ISISA Islands of World Conference)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원고 : 김재은(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출처 : 폴리뉴스 Polinews(https://www.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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