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담그기는 자연과의 대화
장 담그기, 자연을 고려한 지혜의 산물
오랜 시간 계절과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노력 필요
지역마다 기후와 환경이 다르니 그에 맞게 조율하는 것이 중요
![2024년 12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던 제1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의 현장[사진=국가유산청]](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3/686312_496252_5058.jpg)
2024년 12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던
제1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의 현장[사진=국가유산청]
[섬 이야기] 지난해 말,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Knowledge, beliefs and practices related to jang-making in the Republic of Korea)’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장 담그기’는 장을 만들고 관리하며 활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신념을 아우르는 한국 전통 음식 문화를 일컫는다. 이 ‘장(醬) 담그기’ 문화는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하고, 문화다양성 증진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유네스코에서 높이 평가되었음에도 정작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여러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장류는 일상 음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수천 년을 이어온 장 문화는 단순한 음식 조리법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형성된 전통적 생활 방식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이 유서 깊은 전통이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 문화유산을 지키고, 지속 가능하게 계승할 수 있을까?
장 담그기는 한국 전통 식문화의 핵심이다. 간장을 포함한 된장, 고추장 등 다양한 발효 장류는 우리 밥상의 기본을 이루며, 세대 간 전승되는 것은 물론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 정신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장을 담그는 과정은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어야 균이 잘 자라고, 자연 발효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며, 메주를 띄우고 항아리에 보관하는 과정 등 장 담그기는 기후와 계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계절과 조화롭게 형성되어 온 장 문화가 기후변화로 인해 변화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장 담그는 날을 일 년 농사와 같다고 여겼다. 장은 날씨가 풀리는 음력 정월에 담기 시작하는데 입춘에서 춘분 사이가 적당하다. 겨울철 차가운 기운이 물러가고 봄의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는 시기라야 장의 발효가 원활하게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장담그기 좋은 날은 말날이나 닭날 혹은 손 없는 날 가운데 날씨가 좋은 날을 택하는데, 손(잡귀) 없는 날 장을 담그면 잡귀로부터 장을 보호하고 나쁜 기운을 막아 건강한 발효가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또한 바람이 잔잔하고 맑은 날에 장을 담가야 곰팡이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대개 정월에 장을 담그는 것이 가장 선호되었고, 만일 때를 놓치면 삼월 삼짇날 담고 가급적 2월장은 담지 않았다고 한다. 대개 음력 2월이면 양력 3월이나 4월 정도에 해당되는데 그때는 황사도 심하고 봄바람이 많이 불던 때라 2월은 피하고, 늦으면 삼월 삼짇날에 담았다는 얘기는 일기 예보도 없던 시절에 오랜 경험으로 터득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일이다.
장 담그는 과정에서는 항아리에 짚이나 쑥을 태워 소독하거나, 소주로 닦아주는 등 정성껏 관리했다. 그리고 깨끗이 씻은 붉은 고추와 대추, 달군 숯을 항아리에 넣고, 항아리 밖에는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줄을 치거나 버선을 거꾸로 매달아 주면 장 담기가 끝이 난다. 숙성기간도 기온에 따라 달라져, 날씨가 따뜻하면 숙성이 빠르고, 추우면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에 날씨는 숙성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음력 정월에 담가 약 50~60일 정도 지나서 장 가르기를 하는데 보통 송화가루가 날릴 때 장을 가르는게 가장 좋다. 적당히 익어서 장 꽃이 피는 때에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여 6개월 이상 숙성하면 맛있는 장을 얻을 수 있는데, 이처럼 기온, 햇볕, 습기, 바람, 온도 등이 적절한 시기를 택하여 장을 담그는 과정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이를 통해 조화 균형을 이루는 삶을 배우는 지혜의 산물이었다.
특히, 전통 장 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해남 황산면에서 전승되고 있는 ‘동국장’이 있다. 동국장은 띄운 메주로 장을 갈라 된장과 간장 두 가지 장을 만드는 방법과 달리,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지 않고 숙성해 만드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장이다. 한안자 명인에 의해 재현된 이 장은 해남 지역에서 중요한 식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으며, 장 문화가 삶 속에 녹아있는 지역적 특색을 보여준다. 그밖에 해안과 도서 지역에 흩어져 있어 미처 발굴되지 못한 발효음식과 발효문화에 대한 자료를 찾아,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자원이 담겨진 음식문화를 세세히 기록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발효문화는 지역의 환경과 맞물려 발전해왔으나,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제조 방식 또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의 기후변화는 전통적인 장 담그기 환경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은 겨울철에 나타나는 기후 현상이었으나 모두 옛말이 되었다. 지난해 한반도는 역사상 처음 경험해 보는 더위에 시달려야 했는데, 평균 기온 14.5도로 1911년 기상관측 시작 이래 113년 만에 가장 높았고 열대야 일수도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겨울은 절기의 구분을 무색케 하고 있다.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 때는 이상고온 현상이, 입춘(立春)에 시작한 한파가 일주일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겨울철 강수량(39.6mm)이 적었던 반면, 눈이 내린 일수(21.9일)는 평년보다 많아 강수량 중 많은 비율을 눈으로 채운 것이다. 이는 서해상에서 바닷물과 대기의 온도 차에 의해 발달한 눈구름이 유입되면서 눈이 자주 내린 것으로 분석했는데, 이는 따뜻해진 바다가 영향을 미친 셈이다. 기상청에 의하면 겨울철 한반도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12.4도로 최근 10년 평균보다 0.2도 높은 온도다.
이러한 변화는 예전에는 겨울철 찬바람과 맑은 날씨가 메주를 잘 말리고 곰팡이가 균형 잡힌 발효를 도와주었지만, 이상 기온으로 메주의 건조 과정이 어려워지거나 장독대 위의 항아리에 보관된 장이 부패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장을 숙성하는 자연 발효 시스템 자체를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재료인 ‘미소(味噌)’는 쌀, 보리, 콩 등을 발효시켜 만든다. 각종 문헌에 의하면 한국 삼국시대의 된장이 8세기경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일본 에도시대 유학자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1657~1725)가 쓴 『동아(東雅)』(1717년)에 의하면 일본의 된장 미소(味噌)의 어원에 대해 “고려의 장인 말장(末醬)이 일본에 건너와서 그 나라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고려장(高麗醬)이라고 표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로지 순수한 ‘콩’만을 발효시켜 오랜 기간 숙성하는 한국의 장 문화와는 엄연히 다르지만 일본에서의 미소 문화도 유사한 점이 많다. 일본 역시 기후변화로 인해 된장 발효 과정이 달라지고 있으며, 최근 일부 생산자들은 기계식 발효 환경을 구축하여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역시 치즈나 와인 같은 발효 음식이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장기적인 생산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장인들은 발효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과 현대 과학을 접목하여 발효 과정을 보다 정밀하게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기온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미생물을 활용한 연구, 스마트팜 기술을 응용한 전통 장 제조법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접근이 전통 장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다시 며느리 혹은 딸에게로 전승되는 전통 발효문화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의 전환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심과 실천이다. 전통 장 문화를 단순한 유산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속에서도 유지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계승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업과 환경 변화에 맞춰 전통 방식과 현대 기술을 조화롭게 접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장 담그기의 의미와 가치를 다음 세대에 교육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활성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유네스코 등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기후변화 속에서도 우리의 장 문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역사회, 개인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이다.
원고 : 이경아"(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출처 : 폴리뉴스 Polinews(https://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6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