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롬복 해안가 마을에서 생선을 흥정하는 주민들. 인도네시아 섬 음식 관련해서는 졸저 '트로피컬 아일랜드니스'를 참고 바람 (2017년 1월)
지구 공동체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급속한 기후변화는 세계 각지의 생태계 과정(ecosystem process)에 이상을 초래하고 있다. 생물들은 새로운 서식처를 찾아 이동하고, 변화하는 곳에 새로운 생물들이 찾아온다.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했던 사람들도 생태계가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적정 공간을 찾아 이동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이다. 음식은 자연 상태의 생물이나 그것의 개량을 통하여 얻어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가 싹튼다. 음식은 재료를 채취, 저장이나 가공, 요리, 향신료, 먹는 방식 등 다양한 하위문화(sub-culture)를 탄생시킨다. 특히 가축, 어류 등 양식을 해야 할 때 더욱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음식이야말로 생물과 문화, 언어가 만나는 생물문화다양성(biocultural diversity)의 총체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문화다양성은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 두 패러다임이 만나는 접점의 개념이다. 앞서 음식으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이 만든 문화 속에는 결국 자연자원, 생물자원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같은 섬이라도 바닷물 수온에 따라서 모여드는 생선과 해초들의 종류가 다르고, 그것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삶의 방식, 즉 문화는 달라진다. 따라서 수없이 많은 섬이 그러하듯, 자원의 종류와 활용에 따라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필자가 촬영한 사진) 1. 신안군 장산면 낙지 물회. 물회는 보통 크기가 작은 생선을 막회(일명 세꼬시) 형태로 썰어서 양념한 후, 찬물로 섞어 먹는 바닷가 음식. 장산면에서는 낙지로 물회를 한다. (2015년 5월) 2. 경남 통영 욕지도의 고등어회. 고등어 양식을 하므로 신선한 재료를 늘 공급받을 수 있다. (2017년 8월) 3. 신안군 만재도 거북손. '1박2일'에 등장했던 거북손. 최근 거북손 소비가 도시에까지 확산, 급증하고 있다. (2022년 4월)
일찍이 생물문화다양성의 개념을 정의한 TerraLingua의 루이자 마피(Luisa Maffi)박사는, “생태계에 존재하는 많은 생물 사이에 먹이사슬이 존재하듯, 인간사회와 자연과의 관계에도 ‘생명의 그물’(web of life)이 존재하고 있으며, 수많은 생명체는 인간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의 그물은 생물다양성, 문화다양성, 그리고 언어다양성의 세 가지 측면으로 표출되며, 사회생태적 적응 시스템 속에서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세 가지 측면의 다양성이 하나로 연결되는 지점에 지식과 행위가 존재한다. ‘음식(food)‘이야말로 자연에서 채취된 여러 재료를 활용한 지식과 요리해 가는 행위가 창의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결실이다. 따라서 음식은 생물문화다양성의 세 가지 측면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필자는 평가한다.
음식은 재료가 되는 생물의 서식처에서 시작하여, 조리하고, 소비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표현이 언어로 만들어져 전승되며, 지역에 따라 분화된다. 더욱이 고립성의 특성을 가지는 섬 지역의 음식은 내재적으로 발달한 전통생태 지식을 통하여 음식의 구성, 상차림, 맛의 특성을 보전해 오고 있다.
물론 요즘에는 교통이 편리해져 섬 밖의 음식들이 들어와 적응하고, 또한 확산하면서 섬 음식의 고유성도 많이 퇴색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지역 바다의 다채로운 재료를 조리하는 과정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더욱 생물문화다양성의 가치는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웃하는 섬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방식이나 맛의 특성이 다르므로 음식 또한 섬 정체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세계 어느 섬을 가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재료는 생선이다. 열대 섬으로 갈수록 이름을 알 수 없는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밥상에 올라온다. 추운 북극으로 갈수록 흰살생선이 많다.

인도네시아 서티모르 쿠팡의 해산물 시장. 싱싱한 활어를 사서 바로 회를 만드는 것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구이를 하는데 다금바리류 생선이 제일 고가다. (2020년 1월)
그러나 생선을 회로 먹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물론 연어회는 예외이다. 회로 어류를 먹는 것은 - 일단 특별히 다른 반찬이 필요가 없고, 조미료나 각종 향신료가 있어야 하지 않는 - 가장 기본적인 원시적 섭식 방식이다. 생선회는 아마도 바이러스나 독성 미생물을 피할 수 있도록 적응한 고대인들의 오랜 전통이 전승된 것일 것이다.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등 육고기를 날로 먹는 나라도 있다. 필자가 조사하고 있는 지역 중 일본 규슈 쪽에서는 생닭(닭가슴살이나 모래집)을 회로 먹는 문화가 있는데, 우리 해남에서 이 문화는 매우 일반적이다. 노르웨이령인 스발바르제도에서는 사슴, 고래, 물개 등을 날로 먹는다. 아마도 작은 섬인 스발바르는 근처에 있는 아이슬란드의 식습관을 전수했을 것이다.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은 향신료이다. 우리나라의 향신료 종류도 많지만, 고추, 후추 등 많은 것들이 해외 지역을 통해서 유입되었다. 향신료의 발견과 그것의 유통은 새롭지 못했던 세계 음식의 맛을 자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진화시킨 인류사의 매우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 섬 지역의 기본 밥상은 계절성과 기후성을 나타낸다. 계절에 따라 잡히는 생선의 종류, 날씨에 따라 조업 가능한 거리와 물때가 달라지니 어종도 달라진다. 톳이나 미역 같은 해조류가 많이 나오는 섬이 있고, 홍합이나 거북손 같은 조개류들이 많이 있는 섬들이 있다. 따라서, 밥상의 국물도 달라진다. 주인 어르신과 마음을 열어놓으면, 재미있는 섬 이야기도 해주신다. 생물과 문화, 언어가 함께 어우러지는 ’지식과 행위의 시공간‘, 섬 속의 식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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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기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교양학과 교수(생태학 전공) 도서문화연구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 섬생태문화다양성 연구분야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 유인도와 무인도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조사와 연구, 생물문화다양성 이론 개발, 일본과 인도네시아 섬 생태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세계생태학회(INTECOL) 상임이사와 세계지리학회 섬 위원회(IGU-COI) 위원, 목포대학교 SCOPUS 국제학술지 『Journal of Marine and Island Cultures』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