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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044
[3차년도]
영암 선산임씨 고문서
영암 선산임씨 고문서는 호적, 교지, 명문 등이다. 선산임씨 종가문서는 모두 산일되어 현전하는 자료가 많지 않다. 본래 선산임씨 종가는 영암군 군서면 鳩林에 있었으나 16세 임상기 때 입향조 林九齡(1501~1562)의 묘역이 있는 서호면 청룡리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현전하는 문서 가운데 호적은 임상기의 아들과 손자들의 것이고, 교령류도 모두 이 계열의 것이다. 명문류는 분재기 1건이 남아 있는데, 임구령의 1자 林皓(1522~1592)가 부모 사후에 재산을 나눌 때 작성한 것이다. 입향조 임구령은 을사사화를 일으켜 定難衛社功臣 1등에 책록된 林百齡의 동생이다. 그는 영암 구림촌에 鎭南堤를 쌓아 대규모 간척지를 조성하였다. 이를 계기로 구림촌 양반가의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하였고, 그의 아들 임호는 鳩林大同契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 영암지방의 유력 성씨 중 하나인 선산임씨가의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